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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7] 이승연
   조형진   | 2009·12·23 12:01 | HIT : 2,698 | VOTE : 631 |
최근 이승연이 위안부누드를 찍었다고 전국민적 매도를 당해버렸다.
너무나 몰상식적인 행동임은 틀림없다.
아니, 이건 성이란 주제를 우리의 아픈 기억에 붙여버렸다!
(실제로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언론에 보도된 바로는 '누드'와 '위안부'의 만남이었다.)
(물론 제작자의 의도가 어떤지 모르지만, 위안부란 주제는 의도를 깊히 생각할만큼 여유로운 주제가 아니다!)
또 성이란 주제가 만능박사처럼 아무데나 척척 붙을 수 있는건 아니다.

가장 입을 다물 수 없는건,
위안부에서 온갖 고통과 굴욕을 겪었을 그 할머니들이 아직도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연이 너무 잘못했다. (사실 네띠앙이 더 나빠보이지만..)

하지만....대부분 네티즌은 어떠한가?

내가 보기엔 이승연보다 더 잘못하는건 네티즌의 행동이다.

한국 대중은 새디즘(sadism)에 빠져있다.
분출하지 못한 응축된 에너지의 갑작스런 분출이다.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단합을 하며,
이단자를 파멸시킴으로써 조직의 이탈에 대한 무서움을 깨우친다.
또한 너와 우리를 가름으로써 우리의 존립가치를 높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한 사람 처벌하는게 잘못된거냐"라는 반문하겠지만,
지금 나오는 행동들은..
이승연에게 출국금지를 하자는 때아닌 역 인신공격이다.
한국 국적을 말살시키자는 권리도 없는 역 인신공격이다.
사과를 해도 받지 않는 까랑까랑한 자존심이다.
1을 잘못했으니깐 1000정도는 감수하라는 발상이다.

이렇게 과한 에너지의 분출은 시야를 좁게 하는 단점이 있다.
쉽게 말해 이성을 잃기 쉬운 것이다.
이성을 잃으면 원하는걸 얻지 못한다. 이승연을 매도시킴으로써 과연 우리 할머니들의 생활이 행복해질까?

주변에서 아무 관심없이 보고 있다가 잘못한 사람이 나타나자....
각목과 몽둥이를 들고 떼로 덤벼 죽이려 한다.
그런 면에서 대중은 비겁하고 나약하고 치졸하다.
자신은 맞을까봐 평소엔 숨어있다가 기회가 있으니 때리기만 하고 흩어진다.
그 죽임을 당하는 자가 바로 자신일수도 있다는 뿌리칠 수 없는 두려움을 간직한채..

군중이라는 집단에 속함으로써,
갑이란 우월지위속에서 그들은 이승연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군중은 그 아픔을 가진 할머니킿의 손이라도 잡아준 사람인가?
아픔을 대중들이 보듬어 주었다면 그들은 왜 아직도 그렇게 아파하는 것인가?
그들은 철저히 버림받은 가련한 우리들의 어머니다.
욕을 하는 사람들중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것이며,
할머니의 아픔을 나누려고 실제로 나눈 사람은 얼마나 될것인가.
중요한건 이승연이 아니라 우리들의 버림받은 어머니들이 얼마나 그 아픔을 치유하는가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픔을 나누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보다,
"이단자처벌"이 더 큰 관심사다.
이건 한국의 정치의 모습과 아주 똑같은 형상이다!
건설적인것과는 먼,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라는 옹졸한 딜레마..

이건 이승연이 반성하라고 우리 서로 성숙하는 모습으로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 몰살시킴으로써 사건을 마무리시키려는 듯한 행동이다.
가해자도 자기가 죽을걸 알면 탈출구를 찾거나, 되든 안되든 덤비는 법이다.

이승연 안티카페에 가봤다.
오로지 비난이다. 절대로 비판이 아니다.
화가 날 정도로 유치하고 치졸하고 무식한 비난이다.
더욱 화가 나는건 그런 유치한 장난 속에서 현실 속의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만당한다"는 사실이다.
이승연을 패러디한 "일장기를 휘날리며"는 싸구려 웃음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생산적인 논의가 있어서 실제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옳은 일 아닐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싱싱한 과일이라도 사주는 정성은 왜 현실에서 안 일어나는 것일까?

이승연이 문득 불쌍해진다.
소중한 문장 하나가 생각난다.
Forgiveness can not change the past. But it enlarges the future.
용서는 미래를 위한 씨앗이다.
이승연에게 행해지는 행동은 미래의 씨앗을 죽이는 행동이다.
나는 그녀가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게 우리의 자세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소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안쓰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긍정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힘되는대까지 노력할 것이다.
그들과 관련한 사진을 접할때 항상 내 몸가짐을 바로잡곤 한다.
또 나는 그들뿐 아니라 힘없고 가련한 이들에게 보여주는 휴머니즘에 감동한다.

대중들은 중요한걸 놓친다.
이승연이 위안부 누드를 찍던 안 찍던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가슴따뜻한 대우를 해줄 수 있느냐이다. 적어도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들의 인생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갑자기 생각이 문득 든다.
대중들은 치졸한게 아니다라는거..대중들은 단지 순진할 뿐이라서, 보여지는거 느껴지는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언론이란 두뇌가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팔과 다리일 뿐이다란 생각이 든다.

잠깐 과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유승준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사실은 "병역의무는 비인간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병역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지는 않고...우리의 머릿속엔 "스티붕~유"만 남았다.
문희준이 매도되는 것은 머릿속에 무뇌중 or 무뇌충만 각인시켜주었지 "락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

개탄할만한 현실이다.

최근 김기덕 감독이 "비판에 대해서" 한 말이 생각난다.
외국 비판가들은 날카롭고 정확하지만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 비판가들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

도대체 대중들이 진짜로 원하는게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사이버상에서/언론상에서 화풀이를 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내가 살고 있는 Real World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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